삼십 년 전만 하여도 소나무가 우거졌고 방죽엔 갈대가 제법 우거졌던 동구 소제동 소제방죽. 이 곳은 겨울엔 스케이트 타는 유일한 곳이기도 했다.
소제방죽 자리엔 원래 큰 부자가 살았다 한다. 99칸짜리 널따란 기와집도 있었다니 쓸 만한 명당자리인 모양이다. 옛날 아주 옛날에 이 집터에 처음 살았던 부자영감은 인색한 사람으로 이름이 나 있었다. 사람 다루기를 소처럼 다루었고 돈을 모을수록 밥상에서 반찬을 내려놓다 보니 늙어서는 간장 하나를 반찬으로 먹었다는 사람이었다. 더구나 마음씨가 거칠어서 궂은 짓도 잘하는 반면 자기가 손해를 보는 일은 한 번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루는 머슴을 시켜서 외양간 두엄을 치고 있었다. 마침 스님 한 사람이 시주를 받으러 집 문전에 와서 목탁을 치고 있었다. 집안에 들어오는 것은 좋아하나 나가는 것을 싫어하는 주인은 귀찮다는 듯이 마루에서 쫓아내려 오더니 머슴 삽자루를 빼앗아 들고 두엄을 한 삽 담은 스님의 바리에 두엄을 퍼 넣었다. 그렇지만 스님은 아무런 일이 없다는 듯이 공손히 머리를 수그리더니,「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하고 합장한 다음 그 자리를 물러났다. 스님의 바리에 두엄을 퍼넣는 것을 부엌에서 바라본 그 집 며느리는 스님의 고상한 자세에 놀라 얼른 쌀을 한 바가지 앞치마에 가리고 뒷문으로 나와서 멀리 사라지는 스님을 불렀다.「저를 불렀습니까 ?」스님이 그 집 며느리를 물끄러미 쳐다보자 그 집 며느리는 얼른 스님 바리에 쌀을 붓고 돌아섰다.「고맙소이다. 나무아미타불.」스님은 걸어가는 그 집 며느리를 바라보다가 길을 걷더니 다시 돌아서서 그 집 며느리를 불렀다.
내일 아침에 베를 짜던 베틀을 가지고 앞산으로 올라오시오. 좋은 일이 생길 것입니다.
그 다음 날 이 집 며느리는 스님이 말한 대로 베틀을 안고 앞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며느리는 뒤를 돌아봐서는 안 된다는 스님의 말대로 발끝도 보지 않고 앞만 보고 걸었다. 며느리가 산을 거의 올랐을 때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산을 오를수록 하늘은 더욱 컴컴해지더니 이번엔 천둥이 울리기 시작했고, 멀리에서 벼락 치는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허나 며느리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천둥소리와 벼락이 내리치는 소리가 이젠 자기 가까이 들려왔다. 다시 뇌성벼락이 이번에는 자기 뒤에서 크게 하늘을 진동시키는 것이었다.
며느리는 갑자기 스님의 부탁을 잊은 듯 집이 궁금해서 뒤를 돌아봤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자기가 막 떠나온 집으로 불빛이 몇 번이고 내려 비치더니 집은 산산조각이 나기 시작했고, 그 위로 마치 큰 바다의 파도 같은 물결이 공중에서 내려오더니 자기 집 주위를 둘러싸고 못을 만드는 것이었다.
며느리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돌아선 발길을 집을 향해 몇 발자국 디뎠을 때였다.
이번에는 조금 전보다 더욱 크게 뇌성벼락이 내려치더니 순식간에 며느리를 바위로 만드는 것이었다. 베틀을 안은 채 뛰어가려는 자세 그대로의 바위였다.
부잣집이 있던 자리에 집은 온데간데없이 못 속에 파묻히고 연못만 크게 생겼다. 이 방죽엔 그 후 개미나리가 많이 나왔다. 마치 부자집 곳간에 쌓여진 곡식이 거름이 되어서 개미나리를 키우듯 많이 나서 소제방죽이라 불리우게 되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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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0-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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