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진 곳,
우암사적 공원을 가다이쯤에서 잠시 쉬어가면 어떨까. 지친 마음을 추스르기에 제격인 곳이 도심 가까이에 있다.
가양동의 야트막한 야산 기슭에 자리한 우암사적공원. 하루하루 숨가쁘게 지내는 일상에서 잠시 눈을 돌려 가까이 있는 탓에 그 가치를 미처 알지 못하고 지냈던 역사의 한 자락을 들춰보자.
우암사적공원은 조선 후기 대유학자인 우암 송시열(1607~1689) 선생이 학문을 닦던 곳으로 1991년부터 1997년까지 1만 6천여 평에 장판각, 전시관, 서원 등 16동의 건물을 복원해 사적공원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이곳은 선생이 말년에 제자를 가르치고 학문에 정진하던 남간정사, 건축미가 뛰어난 기국정, 송시열 문집인 송자대전판 등 역사적으로 중요한 문화재가 보전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공원 곳곳이 잘 단장되어 있어 도심속 시민들의 쉼터로도 제격이다. 단청이 화려한 입구를 지나 공원 안에 발을 들여 놓으니 푸르게 잘 가꾸어진 잔디와 나무들 사이로 기와를 얹은 옛 건물들이 눈에 띈다. 옛 것이 주는 정취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푸근해지는 것을 보니 그간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네 일상이 이리도 팍팍했던가 싶다. 붉은 기둥의 홍살문 사이로 멀리 명정문(明正門)이 보인다. 올바른 정치를 해야 한다는 뜻이란다.
안에 들어가니 우측에는 모든 괴로움을 참아야 한다는 뜻의 인함각(忍含閣), 좌측에는 마음을 밝고 맑게 쓰라는 뜻을 담은 명숙각(明淑閣), 정면에는 마음을 곧게 쓰라는 뜻의 강당인 이직당(以直堂)이 자리를 잡고 있다. 뒤편 역시 매사 심사숙고하여 결정하라는 뜻의 심결재(審決齋)와 선현의 가르침을 굳게 지키라는 견뢰재(堅牢齋)가 보인다. 공부방의 이름마저도 어찌 이리 높은 뜻을 지녔는고. 과연 우리나라 유학자 가운데 성인(聖人)을 의미하는 자(子)의 칭호를 받은 유일한 인물임이 새삼 크게 느껴진다. 명정문을 나오면 보이는 연못과 덕포루의 모습. 선 비들의 공부방에 잠시 걸터앉아 본다. 따사로운 가을볕과 돌담을 넘어 불어오는 바람을 벗 삼아 망중한을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명정문을 나와 우측으로 돌아드니 연못과 덕포루(德布樓)가 한 폭의 그림같이 펼쳐진다. 덕포루와 더불어 고즈넉한 연못이 운치를 한층 더한다.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근사한 풍광에 다시 한번 마음의 경계가 풀린다.
연못에 떠 있는 것이 연잎인가 내 마음인가 싶다.
한편 사적공원 내에는 봄, 가을 우암 선생의 제향 봉행이 이루어지는 남간사(南澗祠)와 유물관도 마련되어 있다. 유물관에는 효종이 우암에게 북벌을 당부하며 하사했다는 담비털옷을 비롯해 유품과 장서 등 그 당시 역사적 배경을 살필 수 있는 것들이 전시되어 선생의 흔적을 쫓아 사적공원을 찾은 이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조선 후기 이 땅에 유교사상을 꽃피운 우암 송시열 선생의 뜻을 기리고 보존하기 위해 조성된 우암사적공원. 공원 한 바퀴 휘이 둘러본다 하여 선생이 펼친 사상과 학문의 깊이를 짐작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수백 년이 지난 지금, 후손들에게 팽팽한 일상을 잠시 놓을 수 있는 여유를 되찾아준 것이야말로 선생이 우리에게 베푼 또 하나의 덕이 아닐까. 대학자 우암 송시열 선생이 우리 앞으로 성큼 다가오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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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0-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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