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에 오면 관광愛 물들어요

동구의 문화재

관동묘려
1975년 3월에 착공하여 1980년 12월에 완공한 대청댐의 담수가 시작되면서

대전 동구, 대덕구, 충북 청원, 보은, 옥천 등지의 많은 마을들이 물에 잠기게 되었다. 물에 잠긴 마을들의 언저리. 높게만 보였던 산들은 제 키만큼 불어난 물에 자락을 내줘 변화무쌍한 호숫가 선을 그려내고, 더러는 섬이 되어 다도해 같은 호수의 정경을 자아내고 있다.

아름다운 호반, 마산동 가는 길

대청호반 사진

대청호반의 2개구 3개군. 그 중 대전시 동구 대청동 또한 많은 수몰지역을 내고 아름다운 호수의 정경을 끌어안은 마을 중의 하나다. 15개 법정동을 거느리고 있는 이 마을 중 마산동이 목적지. 마산동 가는 길은 세천고개에서 추동으로 넘어와 추동에서 마산동까지 호반을 끼고 가기에 호반 길을 달리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마산동에 전해지고 있는 열부의 이야기를 따라 나선 길. 호수의 풍광을 벗 삼아 조선중기의 문신 쌍청당(雙淸堂) 송유(1389~1446)의 어머니 류씨부인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아이가 삼종지의(三從之義)입니다"

22세의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은 부인을 가엽게 여긴 친정부모가 고려풍습대로 재혼을 시키려 는 것을 부인은 마다하고, 홀로 어린 아기를 업고 500리길을 걸어 회덕에 있는 시댁을 찾았다. 그러나 시부모는 받아들이지 않고 “여자가 부모의 말씀을 따르지 않으면 삼종지의를 모르는 것”이라며 꾸짖어 보내려 하였으나 류씨부인은 울며 대답하기를 “삼종지의가 등에 업힌 아이에게 있지 않습니까?”하자 시부모가 크게 감동하여 맞아들였다.
삼종지의. “어려서는 아버지를, 시집가서는 남편을, 남편이 죽은 후에는 아들을 좇음”을 이르는 말로 류씨부인은 일부종사를 고집했다. 이후 류씨부인은 아들을 훌륭히 키워내고 시부모 또한 극진히 섬겼던 터. 그 정절과 효행을 나라가 인정하여 효종 4년(1653) 정려를 부인에게 하사했다는 이야기다.

아름다운 호수의 정경을 품은 재실 관동묘려(寬洞墓廬)

  • 관동묘려 사진1
  • 관동묘려 사진2

그이야기의 현장 찾아가는 길은 어느덧 마지막 샛길로 접어들게 되는데 추동에서 신탄진 방면으로 길을 잡아 호반길을 따라가다 보면 음식점이 즐비한 마산동 삼거리에 닿게 된다. 이곳에서 직진하면 신탄진. 우회전하여 목적지로 향한다. 길은 외지고 길 옆으로 바짝 다가 온 호수가 반기는 3km 구간의 이 길은 곳곳에 빼어난 호수의 경치를 감상 할 수 있는 포인트가 있는 대청호반의 몇 안 되는 아름다운 길이다. 호수의 경관이 펼쳐지는 아름다운 길의 이름은 은골길. 길의 끝에서 관동묘려를 만날 수 있다.

열녀문을 하사받은 유씨 부인이, 문종 2년(1452) 82세로 죽자 이곳에서 장례를 지내고 그 옆에다 만든 재실이 ‘관동묘려’다. 천상 오지로 밖에 생각할 수 없는 곳에서 맞닥뜨린 관동묘려는 의외였다. 정남향으로 지어진 집은 대청호의 풍광을 집안으로 들이고 있었다. 집 지을 당시의 환경은 아니었지만 전국을 두고 이만한 경치를 품고 있는 재실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대청호가 생기기 전의 관동묘려는 산의 8부능선 쯤, 산정 가까이 위치해 있는 재실로 재실 아래는 지금은 수몰되었지만 대전시 동면사무소가 자리 잡고 있었던 큰 마을이 있었는데, 수몰 전 마을은 은행과 병원, 학교 등이 있었고 지역경제의 중심지로서 상권이 형성된 곳이기도 했다한다. 이 마을에서 북쪽 산정을 바라보면 산꼭대기에 까마득히 보이던 기와집이 지금의 관동묘려. 400년 전에 지은 집으로 추정하고 있는 이 재실은 고종31년(1894)에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재실의 이름은, 대청에 걸린 현판에서 연유한다. 대청의 현판에‘寬洞墓廬’라 쓰여져 있다.

문화재정보

  • 종목 :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7호
  • 답사문의처 : 대전광역시 동구 관광문화체육과 042-251-4205
  • 문의 : 관동묘려(寬洞墓廬)
    이곳은 열녀로 열녀문을 하사받은 쌍청당(雙淸堂) 송유(1389~1446)의 어머니 유씨 부인이, 문종 2년(1452) 82세로 돌아가시자 이곳에서 장례를 지내고 그 옆에다 만든 재실이다. ㄱ자형 재실 건물에 양 옆으로 2칸씩 방이 달려 있는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과 비슷한 팔작지붕이다. 재실 중앙에는 큰 마루를 중심으로 좌우에 안방과 건넌방을 두었고, 안방 옆으로는 2칸 크기의 부엌을 만들었다. 중앙 큰 마루에는 ‘관동묘려’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또한 옆면에 ‘숭정기원후(崇禎紀元後)’라는 현판이 있어 고종 31년(1894년)에 고쳐 지었음을 알 수 있다.
  • 문화재설명
    미륵원지는 고려말 황윤보(黃允寶)에 의해 건립되어 여말선초 회덕황씨가의 적선(積善)에 의해 운영된 역사 깊은 생활유적으로, 행려자(行旅者)들을 대상으로 한 구호활동에서 점차 사회구조 및 봉사활동으로 확대한 대전 최초의 사회복지 기능을 수행한 민간기관이다.
    또한 이색(李穡)과 하륜(河崙), 변계량(卞季良), 정인지(鄭麟趾), 송시열(宋時烈) 등 당시에 정치·학문·문학으로 손꼽히는 인물들이 찬한 제영기(題詠記)에서 그 위상을 짐작할 수 있으며, 청풍명월(淸風明月), 절의정신(節義精神)과 더불어 우리 지방의 향풍(鄕風) 가운데 하나인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는 대전사람의 후덕(厚德)한 인심을 상징하는 중요한 유적이다(출처: 문화재청 홈페이지 http://www.cha.go.kr).

교통정보

  • 네비게이션 입력 : 명칭검색 ‘관동묘려’, 주소검색은 대전광역시 동구 냉천로152번길 291 (마산동)
  • 자가용 이용안내 : 자가용운전안내 - 대전남부순환고속도로 판암나들목에서 옥천방면으로 4번국도를 타고 가다가 동신고등학교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대청호수길로 진입. 계속 직진(약5km)하면 마산동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우회전하여 길을 따라 계속 직진하면 3km전방이 목적지다. 대중교통안내 - 대전역에서 60번 시내버스(06:00~22:20까지 80분 간격으로 운행)를 이용하거나 동신고교에서 출발하는 71번 시내버스(05:50~20:50가지 140분 간격 운행)를 이용하면 마산동 버스정류소에서 내릴 수 있다. 버스에서 내려 호숫가 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된다. 왕복 6km.
  • 자료관리 담당부서
  • 관광문화체육과
  • 이우오 042-251-4204

최종수정일 2020-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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